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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느와르 사건파일 #110 내 마음을 수사해 주세요 | 범인의 위장술
기(起): 수사관의 신조 이 사무실의 수사 원칙은 단순하다. 남들은 당신의 과거에 관심이 없다. 한때 잘 나갔다면 그건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 있는 곳,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당신의 실력이다. 이 원칙을 누군가 들이밀면 대개 불쾌해한다. 그날 찾아온 의뢰인은 달랐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알아요. 그래서 온 겁니다." 의뢰인은 자리에 앉고도 한참 말이 없었다. 손에 쥔 것을 어디에 내려놓을지 모르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를 수사해 주셔야 해요." 나는 수첩을 펼쳤다. "피해자는요?" "저예요." "용의자는요?" "그것도 저고요." 의뢰 내용은 단순했다. 한때 잘 나갔던 한 사람의 인생이 어디서 어떻게 무너졌는지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사건 현장은 이미 오래전에 식어 있었다. 그런 사건일수록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알고 싶어요." 의뢰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어요. 확인해 보고 싶은 거예요." 범인을 알면서 수사를 의뢰하는 사람은 드물다. 수사를 시작했다.
10/12/20261 min read


승(承): 식어 버린 현장
첫 번째 단서: 가장 좋았던 시절
의뢰인은 과거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돈을 잘 벌던 시절,
자녀들은 우수했고 만사가 형통하던 시절이었다.
"돈 잘 벌 때 겸손하게 지키는 법을 배웠어야 했어요.
계속 잘 벌 줄 알고 대책 없이 살았어요."
옛 추억을 자꾸 꺼내는 사람은 지금이 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재가 비어 있으면 사람은 과거를 불러다 채운다.
그러나 수사관이 주목한 것은 추억의 내용이 아니라 시점이었다.
사건은 무너진 날이 아니라 가장 잘 나가던 날에 시작되었다. 계속 잘될 거라고 믿던 사람 곁에서,
그 믿음에 의문을 던지는 이가 없었다.
수사 노트에 첫 줄을 적었다.
가장 잘 나가던 때, 그의 곁에는 누가 있었는가.
두 번째 단서: 너무 쉽게 잡힌 용의자
"정신 차리고 보니 나이가 들었어요. 다시 시작할 자금도 없고."
용의자가 둘 나타났다. 나이와 돈. 둘 다 그럴듯했다.
하지만 수사관은 너무 쉽게 잡히는 용의자를 믿지 않는다.
사건을 시간순으로 놓아 보았다. 돈이 사라진 것은 좋은 시절이 끝난 뒤였다.
나이가 든 것도 그 뒤였다. 둘 다 사건의 결과였지 원인이 아니었다.
같은 나이에 같은 처지가 되어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대개 돈이 아니라 사람이 있었다.
"시작할 자금이 없다"는 말 이전에 숨은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예상 되는 어려움을 알려주거나 고충을 나눌 사람이 없다."
두 용의자는 풀려났다. 수사선은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의뢰인의 곁이 비어 있었다.
세 번째 단서: 비워 둔 자리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 말도 듣지 않고, 내가 옳다는 방식이 나를 망하게 했어요."
"지인들과 어울려 마음을 열고 살았어야 했어요.
서로 상담도 해 주고 정보도 주고받고 가끔 다투기도 하면서요.
그런 관계가 싫고 사람이 싫어서 홀로 지내다 보니 인생이 막혀 버린 거죠."
곁자리는 누가 쫓아낸 것이 아니었다. 의뢰인이 스스로 비워 둔 자리였다.
돈과 자녀가 형통하니 혼자서도 문제가 없었고 굳이 채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사람은 이유 없이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나는 수첩을 덮고 의뢰인의 눈을 보았다.
"무엇을 피하려고 사람을 피하셨습니까?"
의뢰인은 대답하기 전에 오래 숨을 골랐다.
전(轉): 어둠 속에서 드러난 얼굴
네 번째 단서: 위선이라는 일상
나는 단어 몇 개를 책상 위에 던졌다. 연합, 동맹, 타협, 위선, 배신.
의뢰인은 망설이지 않고 골랐다.
"배신이 두려워서 동맹이나 연합 같은 함께하기를 피했어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어요. 진실 대신 위선이 일상이었죠."
이 진술에서 사건의 구조가 드러났다.
배신이 두려웠다. 그래서 함께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위선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점점 믿지 못했다. 믿지 못하니 더 멀어졌고, 멀어지니 세상에서 고립되었다.
고립의 원인은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였다. 처음에는 작은 벽이었을 것이다.
벽은 담장이 되었고, 담장 안에는 자기 자신만 남았다.
"한동안은 잘 지냈어요. 돈도 잘 벌고 아이들도 잘 크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결국 경계를 넘어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어요."
의뢰인은 그 강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건너기 전에는 분명 되돌아올 길이 있었다고 했다.
다섯 번째 단서: 거울이 없는 방
"나를 너무 몰랐어요. 나를 모르니 남도 몰랐죠."
나는 이 문장 앞에서 펜을 멈췄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남이 해 주는 말을 자기를 공격하는 말로 듣는다.
그러면 사람을 피하게 되고, 사람을 피하면 자신을 비춰 볼 거울이 사라진다.
거울이 없는 방에서는 아무도 자기 얼굴을 알 수 없다.
"열정과 지식과 능력은 충분했어요. 좋은 멘토가 필요했던 건데, 그때는 인정하기 어려웠어요.
제가 멘토를 해 주는 입장이었지, 멘토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으니까요."
연합이 되지 않으면 사람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 생각이 점점 사람을 대신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어느 날 주인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나는 수사선을 처음부터 이어 보았다.
가장 좋은 시절, 곁에서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이와 돈은 용의자였지만 곧 알리바이가 성립됐다.
곁자리는 의뢰인 스스로 비워 둔 자리였다.
그 이유는 배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자기를 몰랐고, 비춰 줄 거울도 없었다.
모든 선이 한 점에서 만났다. 그 점에 서 있는 것은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의뢰인의 곁에서 주인 행세를 해 온 얼굴이었다.
결(結): 범인의 이름
진범
진범은 '혼자서도 괜찮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자부심의 얼굴로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배신이 두려운 마음이 변장한 모습이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세운 방어가
어느새 "나는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자랑이 되었고,
위선이라는 누명을 쓴 세상에 맞서려고 쌓은 성이 정작 자기 자신을 가둔 감옥이 되었다.
사건 현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빈자리였다.
"돈을 많이 벌었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돈이 더 많았다면 고립은 더 오래, 더 깊이 이어졌을 것이다.
의뢰인은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범인을 찾으면 인생을 돌릴 수는 없겠지만, 마음은 편할 것 같아요."
맞는 말이었다. 범인을 안다고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범인을 모르는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건을 반복한다.
의뢰인이 나간 뒤, 나는 한동안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이 사무실의 수사 원칙에 한 줄을 덧붙여야 할 것 같았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당신의 능력이라면, 사람을 지운 사람에게는 실력을 보여 줄 무대가 없다.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수사관의 수첩에는 마지막 질문이 하나 남았다.
범인의 이름을 알게 된 지금, 의뢰인이 가장 먼저 두드릴 문은 어디일까?
범인은 늘 가까운 곳에 있기 마련이지.
그 자리가 싫다면 내가 떠나야 합니다.
남을 설득하거나 남이 변하기를 기대해서는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한 번쯤은, 내 곁에서 가장 먼저 멀어진 것이 사람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셨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러 오지만, 저는 문제를 만든 마음의 구조를 함께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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