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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느와르 #108 "판을 바꾼 사람" / 범인은 늘 가까운 곳에 있지
"이번엔 기회일까요, 유혹일까요?" 비가 내리는 일요일 밤이었다. 느와르 사무소 창가에는 블라인드 틈으로 가로등 빛이 가늘게 걸려 있었다. 사건도 없고 의뢰인도 없는 밤. 찻물이 끓는 소리만 사무소를 채우고 있었다. 그때 낯익은 노크 소리가 났다. 오랜 단골이었다. 슬픔도 기쁨도 이 의자에 앉아 풀어놓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은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해결할 고민을 들고 온 얼굴이 아니었다. "오늘은 차나 한잔하려고요." 그는 이미 사업의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결정은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고 했다. 결정을 마친 사람이 한밤중에 탐정을 찾아온다. 이보다 수상한 일은 없다.
10/5/20261 min read


사건의 시작
그는 사업에 관해서라면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사업을 해 왔고, 성공도 맛봤고, 기회를 보는 눈도 있었다.
나에게 사업을 배우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건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첩을 펼쳤다.
이럴 때는 가장 오래된 기록부터 뒤지는 게 순서다.
"신중한 편입니까, 우유부단한 편입니까?"
"우유부단에 가까워요."
의외의 답이었다.
"선택을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고 손해를 본 적이 있어요."
기회를 놓친 사람. 이 말이 오늘 밤 첫 번째 단서가 됐다.
두 개의 마음
그의 우유부단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었다.
머리로 판단하면 마음이 걸리고, 마음을 따르면 의리가 걸렸다.
지·정·의, 세 형제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신속하게 결정을 못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임은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의 손실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브레이크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브레이크가 언제 걸리고 언제 풀리느냐였다.
두 번째 단서
"때를 기다리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죠. 아시죠?"
"그렇죠."
이번에도 같은 대답이었다. 신중함과 우유부단함은 한 지붕 아래 사는 이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평소라면 오래 고민했을 사람이 이번에는 벌써 결정을 내렸다. 왜 이렇게 빨리?
파티를 준비하는 남자
나는 슬쩍 찔러 보았다.
"파티를 준비하고 계시네요. 무슨 파티입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찻잔에서 김이 올라왔다.
"인생 1막에서 작은 성공을 거뒀어요."
그리고 한마디가 더 나왔다.
"그때 더 큰 기회를 놓쳤습니다."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어 두었다. 사람은 현재의 기회를 보고 결정하는 것 같지만,
때로는 과거에 놓친 기회가 대신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세 번째 단서: 성냥불
내면을 들여다보자 전혀 다른 얼굴이 나왔다. 겉으로는 신중한 사람.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는 성냥불처럼 빠르게 타오르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중요한 결정은 누구 의견을 듣고 합니까?"
"아니요. 혼자 합니다."
"급하게 결정하는 편이기도 하죠?"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맞아요."
급한 결정으로 손해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것이 바로 우유부단이었다.
한 번 급하게 결정했다가 다친 사람은 그다음부터 지나치게 신중해진다.
우유부단은 범인이 아니라 사고 뒤에 남은 흉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돈은 용의선에서 빠졌다
나는 사업과 돈의 흐름을 훑었다. 이상하게도 돈 자체에서는 큰 문제가 나오지 않았다.
알리바이가 성립한다. 대신 다른 곳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마음과 관계였다.
"돈보다 마음과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봐 걱정이 됩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돈 벌려면 상처가 수반되겠죠. 편안하게 돈 버는 방법은 없어요."
사업을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위험을 설명해 줄 필요도 없었다.
필요한 건 다른 질문이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판까지 바꾸려는 겁니까?"
결정적 단서
"사업의 근거를 근본부터 바꾸고 싶으십니까?"
"네."
이유는 분명했다. 놓쳤던 기회를 되찾으려면 지금의 판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다른 길을 제시했다.
"판을 새로 짜기보다 지금 기반을 유지하면서 새 기회를 잡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 봤어요. 그래도 큰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판을 바꾼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논리는 매끈했다. 사업가의 판단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됐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탐정의 옛 직업
그는 몰랐다. 오랫동안 마음을 털어놓은 이 탐정에게 상담가 이전의 직업이 있었다는 것을.
기업 분석 전문가.
나는 심리적 범인을 쫓을 때 사람의 말만 믿지 않는다. 기업의 숫자도 용의선상에 올린다.
사업의 규모, 현금 흐름, 손익, 투자 구조, 기회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사업을 버리고 새 판으로 옮길 때 실제로 잃게 되는 것들.
심리와 회계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지만, 가끔 같은 범인을 가리킨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가 키우려는 건 규모가 아니었다. 판 자체였다.
그리고 판을 바꾸는 값은 장부에도 마음에도 청구서로 날아온다.
마지막 질문
나는 다시 그의 내면으로 돌아갔다.
"지금 마음이 불처럼 뜨겁죠?"
"네."
"이번 기회가 다시 찾아온 기회인지, 놓친 기회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만든 유혹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침묵이 흘렀다.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오늘 밤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에게 현재의 기회뿐 아니라 과거에 놓친 기회도 함께 들어와 있었다.
범인 체포
이번 기회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다. 성공할 가능성도 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범인은 놓친 기회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아주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어 낸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자."
"이번에는 판을 바꿔야 해."
"이번에 못 잡으면 또 놓친다."
모두 맞는 말처럼 들린다. 바로 거기에 이 범인의 솜씨가 있다.
판을 바꾸는 결정이 통째로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결정을 밀어붙이는 힘의 일부가 지금의 기회가 아니라 과거의 아쉬움에서 나오고 있었다.
일말의 불안은 바로 그 무리수를 그의 직감이 먼저 알아챈 신호였다.
그는 약점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가장 정직한 목격자였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결정을 취소하라고 하지 않았다. 이번 기회가 성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보았다.
다만 한 가지를 권했다. 결론을 서두르지 말 것.
마음이 이미 뜨거워져 있으니 이번에는 오히려 그동안 약점이라 여겼던 신중함을 선택할 때라고 했다.
불이 붙은 성냥에는 바람막이가 필요한 법이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늘 해 오던 대로 상담소를 찾은 겁니다."
그랬다. 그는 결정을 내리러 온 게 아니었다. 자신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없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다.
차 한잔하러 왔다가 뜻밖에 큰 사건을 만난 셈이다.
그가 문을 나서고 나는 식은 찻잔을 치웠다.
이번 사건의 범인은 사업의 실패도, 돈도, 새로운 기회도 아니었다.
한 번 놓친 기회를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
그 마음이 너무 뜨거워지면 기회와 유혹은 놀랍도록 비슷한 얼굴로 찾아온다.
심리 탐정은 결정을 대신하지 않는다.
다만 결정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몰래 운전대를 잡고 있는 범인을 찾아낼 뿐이다.
그가 이 판을 어떻게 짤지는 다음 사건 파일에서 이어진다.
마음을 정했는데도 이유 모를 불안이 가시지 않습니까?
불안은 때로 가장 정직한 목격자입니다. 느와르 사무소의 찻물은 늘 끓고 있습니다.
좋은 질문 하나면, 범인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좋은 질문은 마음속 깊이 숨겨진 답을 만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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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러 옵니다. 저는 그 문제를 만든 마음의 구조를 함께 발견합니다.
그 구조를 이해하면 해결책은 훨씬 현실적이고 오래갑니다.





